형사절차의 기본이념은 실체진실주의의 실현을 통한 범죄통제(효율성)뿐만 아니라, 적법절차의 보장에 의한 인권보장(공정성)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 이념을 조화롭게 실현하는 것이다. 개정된 형사소송법의 기본방향은 공판절차에 관한 규정을 정비하고, 형사절차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공정한 형사재판을 보장하는 공판중심주의의 실현에 있다. 이러한 공판중심주의는 공개재판의 원칙, 구두변론주의, 직접심리주의 등과 같은 공판절차의 기본원칙들로 구체화되지만 그 실질은 결국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있다.
실질적으로 법정에서 직접주의와 구두변론주의를 철저히 하면서 집중적이고 계속적인 심리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쟁점이(증인이라면 그 증언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심리계획을 사전에 세울 수(반대신문의 준비) 있어야 한다. 피고인의 방어권이 얼마나 실효적으로 보장되는가는 사전준비가 얼마만큼 충실히 행해졌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에게 충분한 방어기회를 주어 검사와의 논쟁을 통해서 진실을 발견하려고 하는 법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측에서 적절하게 피고인 측의 입증준비를 보호ㆍ후원하고, 피고인 측이 그 방어에 필요한 지식ㆍ자료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객관적인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전제로 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되는 것이 바로 증거개시제도이다.
증거개시제도는 당사자 일방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공판정에서 사용하기 전에 반대당사자에게 제공하여 미리 예상치 못한 불의의 공격을 회피하게 함으로써 공판의 진실발견기능을 제고함과 더불어 소송의 신속을 기하려고 하는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종래 검사의 시혜로 운영되던 공판전 기록열람ㆍ등사를 ‘피고인의 권리’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용산철거민사건 재판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당사자(검사)가 법원의 증거개시결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동 사건관련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불이행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수단이 없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그 밖에도 검사의 증거개시의무의 범위, 법원의 열람ㆍ등사결정에 대한 불복방법,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증거개시의 범위 등에서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할 점이 존재한다.
이 논문에서는 증거개시제도와 관련한 두 가지 논점: 첫째, 피고인 또는 변호인과 검사의 공판준비와 공격ㆍ방어능력에서 실질적 당사자대등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둘째, 증거개시가 지니는 딜레마의 핵심인 증거개시에 따르는 폐해 또는 그에 대한 의구심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인 방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하여 증거개시제도의 내용과 판례경향을 살펴보고, 증거개시와 관련하여 제도적으로 보완이 요구되는 문제점에 대하여 법정책적인 관점에서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