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입법학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입법이론의 모색을 목적으로 한다. 전통적인 법해석학과 대비되는 입법학의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입법절차의 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그 이유는 입법의 기저에는 가치간의 갈등 또는 불일치가 전제되어 있어,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차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이 논문에서는 절차주의 이론가들인 롤즈(John Rawls),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그리고 것만과 톰슨(Amy Gutmann & Dennis Thompson) 등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절차주의자들(특히, 이 논문에서는 롤즈와 하버마스)은 순수절차(pure procedure)라는 개념을 이론적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에 기반하여 가치간의 갈등 또는 불일치를 감축시키고자 한다. 순수절차라는 것은 결과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공정한 절차를 따르는 것 이외에 독립적인 기준이 없을 때 성립한다. 달리 말하여, 순수절차에 있어서는 그러한 절차 자체가 입법의 정당성 또는 입법절차의 절차적 흠결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독자적인 기준으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순수절차는 만일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입법과 관련한 다양한 분쟁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유용한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절차주의적 전략은 궁극적으로 타자들을 불가피하게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즉 순수절차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실체적 가치들이 배제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순수절차라는 개념은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은 입법절차는, 순수절차주의의 한계 극복을 위해, 비순수절차주의적인 토대위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법해석학 보다는 입법학 또는 입법이론에 더욱 적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입법형성 과정에 있어 사회적ㆍ역사적으로 이미 정립되어 있는 절차적 규칙을 준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절차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사회 내 개별 주체들이 담지하고 있는 실체 또는 가치들이 충분히 논의되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탐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바로 입법학의 종국적 소임이라고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