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기 말인 2016년 2월 우리는 ‘무제한 토론’ 이라는 국회법상 제도의 실현을 목도했다. ‘테러방지법’ 입법과정에서 행해진 무제한 토론은 191시간동안 지속되었고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과 언론은 우리 국회법상 ‘무제한 토론’을 미국의 필리버스터(filibuster)와 동일한 제도로 소개하거나 아예 무제한 토론이 아닌 필리버스터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필리버스터와 우리의 무제한 토론은 다르다. 미국의 필리버스터는 명문의 규정에 의하여 인정되는 제도가 아니지만 우리의 무제한 토론은 국회법이라는 명문의 법률에 의해 인정되는 제도이다. 따라서, 무제한 토론 관련 입법과정을 분석해 ‘입법의 목적’을 적실히 밝히고 그 입법목적을 중심으로 테러방지법 입법과정에서 실현된 무제한 토론을 헌법학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테러방지법 관련 무제한토론은 의회의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률안 상정과 처리에 맞서 의회의 소수당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제한 토론은 국회 입법과정의 ‘효율성’이나 다수가 지배하고 의회 다수세력의 의도대로 의사가 결정되어 진다는 민주주의(demos+cracy)의 ‘다수정’(majority-rule)의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제한 토론이 인정되는 이유는 대의제 의회의 ‘숙의’(deliberation)의 강화를 위해서이다. 이것이 국회법상 인정되는 무제한 토론의 입법목적이고 더 나아가 ‘무제한토론’이 헌법학상 인정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무제한토론이 소위 ‘보여주기’식 정치 이벤트에 그친다면 오히려 무제한토론의 입법목적을 왜곡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19대 국회기 말 이루어진 무제한 토론은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수 십 시간 동안 서서 반대토론을 이어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테러방지법에 집중하고 비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당시 소수자들이 주장대로 엄청난 문제점을 내포한 ‘테러방지법’은 당시 소수자가 다수자가 된 후 1년여가 지난 현 시점에서 단 한 건의 일부개정법률안도 발의되지 않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변두리 법이 되었다.
무제한 토론은 소수자 보호를 위한 제도이지만, 소수자 보호의 목표는 소수의 선호가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문제이고 이를 통한 국회입법과정의 목표는 개별 국회의원들의 양심에 따른 공공의 이익이어야 한다. 다수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대의제 합의제 의사결정 기구인 국회에서 소수자 보호가 필요한 이유는 의사일정의 방해가 아니라 소수자의 의견 개진을 통해 소수가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우리는 2012년에 ‘무제한 토론’이라는 제도를 명문으로 만들었고 2016년에 처음으로 운영해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제 제도 운영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고치고 장점을 극대화 하여 소모적인 무제한 토론이 아닌 생산적인 무제한 토론이 되도록 하는 반성적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