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적 입헌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서 모든 지배적 형태를 헌법적 지배를 통해 해체하고자 하였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자들은 다수에 의한 소수의 지배라는 특정한 지배적 양식을 용인하는 민주주의를 부정적인 정치형태로 인식할 수밖에 없고, 헌법에 의한 그것의 제약가능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입헌민주주의는 헌법적 내용을 구성하는 기본권의 목록구성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점을 가진다. 자연법적 전통은 다원주의라는 정치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현대인들에게 합당하게 수용될 수 없고, 합의적 방식을 취할 수도 없다. 자유주의전통의 하나의 공리인 통약불가능성을 고려할 때, 합의적 방식은 자유주의자 자신들이 배제했던 다수결원칙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하버마스의 민주법치국가모델과 만난다. 민주법치국가모델은 탈형이상학적 차원에서 고려된 ‘담론원리’라는 도덕적 형식의 틀 속에서 기본권의 정당화방식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는 담론원리에 기초하여 형성된 민주주의원칙 그 자체에서 기본권의 정당성을 구한다. 민주법치국가모델에서의 기본권은 국민주권의 맥락에서 ‘만인에게 좋은 선의 창출’을 위한 조건으로서 제시된다. 민주법치국가모델에서 기본권은 ‘만인에게 좋은 선의 창출’을 위한 모든 시민의 자유로운 참여와 모든 쟁점에 대한 자유로운 논증을 보장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러나 민주법치국가모델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화적 구조를 위한 형식적 규정으로서의 기본권 설정만으로 다수의 지배를 막을 수 있을까? 소통적 정치와 관련하여 제시되는 민주법치국가모델의 생활세계개념을 고려할 때 이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민주법치국가모델에서 제시하는 생활세계는 ‘실제 생활세계’와는 동떨어진 ‘이상화된 생활세계’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법치국가모델은 그것의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그것의 힘의 불균등성(inequality)과 경직성(hardness)이 지배적인)‘실제 생활세계’에로의 적용은 ‘만인에게 좋은 선의 창출’보다는 힘의 지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