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요지≫
고의적인 불법행위자에게도 과실상계 또는 책임제한법리를 적용할 수 있느냐
는 문제가 있다. 즉 손해배상채권자에게 과실이 있어 그 과실이 손해의 발생이
나 확대를 야기한 점을 감안한 과실상계 또는 공평한 손해부담이라는 이념에 비
추어 제반사정을 참작하여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책임제한이 가능하느냐는 문제
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범위를 한정하여 주식회사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제한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삼성전자 주식회사의 비상장주식 저가매도사건에서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이
사들의 행위는 책임이 해제될 수 없는 부정행위에 해당된다고 판결하였다. 이
사건의 경우 삼성전자 주식회사가 비상장주식을 매각하여 반도체 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조달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이사들은 당시의 관행에 따라 상속세법 시행
령에 근거하여 비상장주식의 매매가격을 정한 것이다. 법률의 규정에 근거하여
비상장주식의 가격을 평가하는 것이 관행이며, 이사들이 그 관행에 따라 행동한
경우 고의 또는 중과실로 임무를 게을리하여 회사에 손해를 가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이사들의 행위는 책임이 해제될 수 없는 부정행위
가 아니라고 사료된다.
2011년 상법개정 전 대법원 판결 중에는 이사의 행위가 부정행위에 해당되는
경우에도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는 판결도 있다.
그러나 2011년 개정상법에 따르면 이사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 정
관에 규정을 둔다하더라도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을 감면하는 것이 인정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의 책임제한 법리가 개정상법 시행 후에도 적용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다양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책임을 제한하는 판례의 법리가 현실적으
로 적절한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판결문을 살펴보더라도 다양한 사정을 구
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 지가 불명확하므로, 법률의 구체적인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 이
사의 고의적인 행위로 인하여 회사에 손해가 초래된 경우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을 제한하지 아니하는 것이 타당하다.
민법의 손해배상액의 경감청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손해가 고의 또는 중과
실에 의한 것이 아니며, 배상으로 인하여 배상자의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
게 될 경우 배상액의 경감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765조 1항). 이 규정과의 균
형적인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사에게 고의가 있으며, 배상할 자력이 있
는 경우 책임제한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